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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Factory Emerging Artist show II: Faces

2012 팩토리 이머징 아티스트 쇼 2: 얼굴들 (이수경 개인전)
기간/ 2012년 2월 11일-3월 10일
장소/ 갤러리 팩토리, 서울
기획/ 워크온워크
인쇄물 디자인/ 김청진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갤러리 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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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기획자의 글
이 글은 작가와 기획자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가 바탕이 되었다. 먼저 작가가 작업 노트의 형식으로 글을 작성하였다. 기획자는 작가의 글 사이에 개입하여 때로는 응답으로, 때로는 다른 맥락에서 글을 작성하였다.

삶이라는 게 어떤 커다란 꿈을 향해 저 멀리 나아가거나, 마음 속에 원대한 소망을 품은 채 한발 한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자꾸 자꾸 벽 앞에서 주장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한다. 오래 준비한 강력하고 깊은 한마디를 던지고 싶지만 그것을 포기/보류하고 대신에 즉각 즉각 말해보려는 것이다.

우리는 (140자의 글자수 제한을 넘기지 않고) 누군가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재치있으나 강력하고 그러므로 결정적인 한 마디를 생각해내려 애쓴다. 이것은 글이라기 보다 오히려 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말하기가 두려운 순간은 늘어만 간다. 사건의 속도는 나의 생각보다, 말보다 빠르다. 이와 같은 순간, 이수경은 강력한 말 한 마디를 던지기보다 즉각적인 말하기를 시도하려는 듯 보인다.

작업은 계획을 가지고 시작되기 보다는 생각에서 손으로 직관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다보면
어떤 형태나 신체는 대개 생략되거나 간단하게 표현되곤 한다. 직관은 빠르고 가벼운 표현에 적합하다.

이수경은 간편하고 일상적인 도구로 표현이 가능한 드로잉 작업을 한다. 이수경의 드로잉은 사건의 순간이나 감상을 기록하기 위한 스케치가 아니고, 작업의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과정도 아니다. 그렇다면 개념적인 드로잉 작업일까? 개념적 드로잉으로 알려진 윗세대 작가들과 일련의 젊은 작가들이 하고 있는 간결한 드로잉, 오브제,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텍스트로 조합된 형식의 작업도 아니다.

직관적으로 그려진 이수경의 드로잉에서 빠르고 가볍게 표현되는 얼굴들은 얼핏 서로 닮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가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표현 방식에 있어 일관성을 가진 등장 인물이 생겨날 법도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80여점의 작업에서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을 찾을 수 없다. 작업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렇게 분절된 이야기들이 모여 말이 넘쳐나는 전시를 만들어낸다.

때로 드로잉들은 일러스트/디자인/만화/미술의 경계에 위치하는 것 같다. 설명하기 애매한 등장인물들의 표정은 상황에 몰입되지 않고 공간 속에서 여기저기 딴 곳을 바라본다. 눈 앞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몰입하는 대신 시시함을 느끼면서 그들은 우물쭈물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물쭈물의 표정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것에 능숙해진지 오래되었고, 그래서 우물쭈물에도 다양한 표정과 자세가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수경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동물 혹은 사물은 어딘가 비어있는, 불완전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무언가가 생략된 모습은 생략되지 않은 요소를 오히려 도드라지게 한다. 현대 미술의 범주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이수경은 스스로의 작업이 늘 어딘가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만 이수경은 대상이 미화되거나 세련화되고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을 지양하여 관람자의 시선이 보다 섬세하게 반응할 것을 요청한다.

어떤 생각을 발언하고 그것을 듣게 하는 것보다는 보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 이것들은 말하는 드로잉이 아니라 우물대는 드로잉, 입을 꾹 다문 드로잉이다.

우물대거나 입을 꾹 다문 듯 보이는 이수경의 작업은 전시 안에서 역설적으로 수많은 모호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작업의 일부와 함께 최근 시작된 일련의 오브제 작업을 선보이는 이수경의 첫 번째 개인전은 거대한 명제를 써내려가기보다, 지금-여기의 명제들 틈에서 작고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발화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두에게 입장과 위치를 표명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어느 시기를 앞둔 지금, 입을 꾹 다문 드로잉이 말하는 것에도 귀기울여보자.